• 프롤로그

    역사는 크게 굽이칠 때 위험과 기회를 선사한다.
    휩쓸려갈 수도 있지만 발전의 폭과 속도를 높이려면 변화의 기운에 올라타야 한다.
    지금 아시아인들은 그러한 역사적 급류(急流)를 목도하고 있다.
    과거 500년간 서구가 장악했던 경제적 헤게모니가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 징후는 뚜렷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성장엔진으로 각인됐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의 경제 성장은 서구 선진국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서구를 앞지르고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국제적인 위상도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확인했듯이 세계인들은 이제 아시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장대환 사진이미지

    하지만 아쉽게도 아시아는 여전히 잘게 쪼개져 있다. 나라마다 경제발전 수준이나 정치체제, 종교, 언어, 역사적 경험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원 아시아(One Asia)는 모자이크(Mosaic)다. 즉, 아시아(Asia)는 잘게 깨어진 여러 조각들과 같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빛깔도 제각각이다. 원 아시아는 이런 다양한 조각들을 정교하게 모아 아름다운‘모자이크’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천편일률적인 조각들로는 모자이크를 만들 수 없다. 조각이 각양각색일수록 모자이크의 그림은 더 뚜렷해진다. 조각 하나의 단점도 전체 모자이크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원 아시아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大勢)다. 일찌감치 통합 논의를 진행시켜온 ASEAN 10개국은 물론이고, 원 아시아의 핵(核)이라 할 수 있는‘한국, 중국, 일본’이 아시아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행동을 시작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산관학회의는 2011년 3국 정상회의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보고서가 채택되면 한·중·일 FTA 논의는 본격적인 정부 간 협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한·중·일 FTA가 체결될 경우 3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0조 달러에 달한다. 단박에 EU(16조 달러)와 NAFTA(14조 달러)에 이어 세계 3대 자유무역지대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FTA가 아니더라도 원 아시아를 향한 정부 차원의 협력은 제도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10년 5월 3국 정상은 3개국 협력을 위한 상설사무국 설치에 합의했고, 한국 국회는 이미 관련 협정안을 비준 동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 과거 역사적 격변기에 그랬듯이 아시아를 이루는 조각들이 다시 한 번 흐트러진 셈이다. 한동안은 혼란스럽겠지만 흩어진 조각을 제대로 맞춘다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모멘텀(Momentum)이다. 무르익어가는 주변 여건들에 행동의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선진그룹과 후진그룹, 일본과 중국, 동북아와 동남아 사이에서 조정자(Coordinator) 또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이 나설 때가 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EU와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나라이기 때문에 아시아와 미국·유럽을 연결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한국이 촉진자·조정자로서 원 아시아 구축에 기여하려면 선진국(先進國)뿐만 아니라 문화적·도덕적 우월성을 갖춘 선진국(善進國)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적·심리적·지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남을 먼저 배려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원 아시아의 비전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원아시아 모멘텀 책이미지
    이 책은 원 아시아의‘입문서(Introductory Textbook)’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아시아의 개념부터 시작해 원 아시아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또 역사 속에 등장하는 원 아시아와 함께 아시아 지도자들이 진단한 원 아시아의 미래도 별도의 장(章)으로 담았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원 아시아의 지리적 범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점, 한·중·일의 공동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 모래알 같은 아시아를 한 데 묶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점 등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될 것이다.
    영문 이니셜로 표현되는 국제기구 명칭이나 EU의 역사 등이 다소 낯설 수는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원 아시아의 큰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더 풍요롭고, 더 평화롭고, 더 개방적으로 변모한 원 아시아는 세계와 인류 전체의 축복이기도 하다. 원 아시아가 실현되면 긴장관계에 있던 아시아는 화합과 여유의 하모니가 흐르는 지역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 안에서 세계인들은 더 큰 시장에서 더 많은 성장기회를 누리며, 오늘날 서구 선진국 국민들의 전유물인 여가생활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커진 아시아의 영향력은 더 큰 책임감으로 이어져 인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아시아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몸은 아시아에 있지만 눈과 마음은 서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학자와 학생들은 서구의 학문을 공부해 검증된 제도와 시스템을 습득하는 데 급급했고, 관리들은 서구의 원조와 차관을 얻어와 나라를 일으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기업인들은 서구의 트렌드를 읽어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수출품을 만들어내는 데 골몰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아시아는 세계의 미래이자, 한국의 미래다. 이 책이 그러한 미래의 포부를 여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매일경제신문.mbn 회장 장대환